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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원 김 한선 원장(한국의 슈바이처)

   적십자병원장 역임중    한국의 적십자 업무에도 깊숙히 관여해 오던   63의 실질적 리더

   리더(50주년행사 초기.. 코로나 3년을 맞고 좌초 위기의 행사를 중심에서 지켜줘서 ... )  

   

   김한선원장은  의료 낙후 지역인 경기북부 휴전선 부근 버스종합터미널(전곡의 중심지)

  서울의원에서 주민들의 아픔들과 함께한 시간이 10년이 되었나 봅니다


  언젠가 서을의원을 방문했을때 

  어느 노인이 원장님방 앞에서 " 치료비가  얼마야? 하며 묻는것도 보았고.. 

  진료시간이 지나서 찾아오는  환자를 보고...  다시 힌 가운을 입는걸 보았습니다


  식사하러  버스 터미널을(옛터) 지나는데 시민들이 원장님! 하고 인사들도 하더군요


  진정으로  아픈 시민들과 10년을 같이 하였군요

  언제나 편안한 웃음으로 지역 환자들을 지켜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연천신문에서 특별히 인터뷰한 기사를 찾았습니다

  


군민의  건강과  행복한  삶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서울의원 김한선 원장

조혜형 | 기사입력 2025/02/27 [13:28]

[연천신문=조혜형 발행인]     2015년 3월, 서울적십자 병원장과 서울 서북병원장으로 잔뼈가 굵었던 서울의원 김한선 원장이 연천군 전곡읍에서 의원을 개원한지 꼭 10년이 되었다.

 

 

본지는 수도권 최북단 접경지역의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치료받지 못해 병세가 나빠지거나 치료 시기를 놓쳐 어려움에 늘상 노출되어 있는 주민들에게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정신으로 묵묵히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숨은 참 의료인 김한선 원장을 찾았다.

 

김한선 원장은 지금부터 20년전인 2005년도 서울적십자병원장으로 근무할 때, 당시 칠순을 맞은 노인이 5백만원짜리 자기앞 수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온 사연을 소개했다.

 

1953년 6.25가 끝나던 시기에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어 생명이 위독했으나 수술비가 없어 여러 병원을 찾아 목숨을 구해달라고 뛰어다녔던 20세 청년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적십자 병원을 찾아와 울면서 애원한 끝에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된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수술후 병원비를 마련못해 야반도주했던 청년이 50년이 지나 칠순이 되어 삶을 정리하는 시기에 본인(김한선 병원장) 앞으로 사과편지와 함께 자기앞수표 5백만원을 보내 왔었던 눈물겨운 사연을 상기하면서 김한선 원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때부터 김한선 원장은 “의료인으로서 희생과 봉사라는 기본사명을 가슴에 새기고 빈곤과 질병은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의료 취약계층을 위하여 나의길을 갈 것을 다시한번 마음을 다졌다”고 하였다.

 

본지 취재를 정중히 사양하는 김한선 원장은 “의료취약 지역인 연천에서 자리잡은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앞으로도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연천군민들에게 건강과 행복한 삶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 저의 행복이다”고 하였다.

 

본지가 직접 확인한 내용에 의하면 김한선 원장은 2014년도에 정부로부터 고위공무원들 조차 받기 힘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또한 서울적십자 병원장, 서울시립 서북병원장 등을 역임하여 금전적 이익이 아닌 봉사와 희생을 감내하며 참 의료인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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