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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일 중앙일보 기고문(63 이근면)



오피니언 기고

30조원 세수 부족과 포퓰리즘 경쟁

중앙일보

입력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대학가에서 ‘1000원 학식’이 요즘 인기다. 밥 한 끼 사 먹으려면 1만원이 보통인 요즘 물가에 단돈 1000원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7년 농림부가 대학생들이 아침을 거르지 않게 하게 하고 쌀 소비도 늘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1000원의 아침밥’은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가 1000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대학 예산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1000원 학식이 큰 인기를 끄는 데는 급등한 물가로 얇아진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정부의 과감한 돈 풀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억7800만원이었던 예산이 올해 들어 15억8800만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남에 따라 참여 대학도 지난해 28개에서 올해 초 41개로 늘어났다. 2차 추가 모집을 거쳐 지금은 145개 대학이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이 재원 부담으로 속앓이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여야 ‘1000원 학식’ 선심 경쟁
공정한 재원 분배 왜곡될 우려
미래 준비하는 정치 사라졌나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학생들 아침밥도 먹이고 쌀 소비량도 늘린다는 ‘예쁜 그림’에 여야 지도부가 모처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대학을 경쟁하듯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학식을 먹고 손뼉도 쳤지만, 마냥 웃고 있기엔 어딘가 찜찜하다. 진보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던 보수 정당도 막상 정권을 잡은 뒤엔 나랏돈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를 이어가는 데 대해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듯해서다.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국민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복지정책과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돈을 뿌리는 포퓰리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지금 화제가 되는 1000원 학식 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재원 사용 측면에서 우선순위와 균형 및 공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공짜 지하철 타고 먼 길을 이동해 사설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탑골공원에서 하릴없이 하루를 때우는 노인보다 대학생들의 형편이 더 곤궁하다고 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해 지금의 노인 빈곤보다 청년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 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입에 실패한 재수생도 있고 대학에 가고 싶어도 형편이 어려워 공장에 취업한 청년도 있다. 이제 막 취업한 사회 초년생들도 돈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 때만 허용된다고 한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1000원 학식 정책을 보면 고개를 흔들 것이다.

시나브로 이어져 온 포퓰리즘 경쟁에는 여와 야의 구분도 없다. 10여년 전 무상급식이라는 전선을 두고 온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싸웠지만, 이제는 누구도 무상급식 없애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잣집 아들에게까지 나랏돈으로 공짜 점심을 먹여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도출되지 않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상급식을 주어진 기본값으로 여기고 더 많은 공짜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공짜정책은 한 번 세상에 나오면 없어지지 않고 더 크고 더 화려한 공짜정책으로 확대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공정하고 공평한 재원분배가 아닌 포퓰리즘의 공평함만이 남을 것이다

1000원 학식도 당장은 예산 규모가 크지 않고 사업도 일시적인 것이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지만 앞으로 1000원 점심, 1000원 저녁으로 확대하자고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내던 1000원도 나라에서 다 내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다. 아니 정치인들이 먼저 내주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공짜 학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백수에게는 ‘공짜 백식’을, 공장에 취업한 청년에게는 ‘공짜 공식’을, 사회 초년생에게 ‘공짜 회식’을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정책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한 해의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수 결손이 확정된 것만 30조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위기라는데 지금 우리가 위기의 초입에 있는지 절정에 있는지 터널 끝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 앞에는 빚으로 굴러가는 나라의 어두운 모습과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오버랩되는데도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복지라는 미명 하에 국가 예산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행태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돈 나올 곳은 뻔한데 나갈 곳이 많으면 가계든 기업이든 종국엔 파산을 면치 못한다.

위정자들이 국민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예산의 의미와 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1000원짜리 학식으로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는 것보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이 더 절실히 필요한 때다. 무엇이 진짜 공평하고 무엇이 진짜 공정한 것일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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